2024.10.09.
매해 맞이하는 한글날이지만 2024년 올해는 특별하게 한글날을 맞이하고자 직지소프트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 6명과
한글날 578돌을 기념하는 이벤트를 기획했습니다.
한글 창제의 목적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언어, 문자로서 출발하고 자리 잡아왔다면,
현대에서 한글은 어떤 모습이며, 디자이너로서 한글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라는 두 개의 질문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섞어짜기(Font Pairing)” 를 이용해 한글 서체의 매력을 다양한 조합으로 표현해 국문 서체 간의 조화로움을 전달고자 했습니다.
라틴과 국문의 섞어짜기는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지만, 한글날을 기념하는 만큼 국문 서체 하나하나의 매력에 깊게 집중해 보고자 6명의 디자이너들은 국문 서체만을 사용하여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과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각자의 방식으로 섞어내어
한글의 조화로움과 개성을 표현했습니다. 어떤 그림들이 만들어졌을지 함께 둘러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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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어짜기란?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섞어 짜기’는 서로 다른 언어권의 문자를 섞어 조판하는 것을 말하며, 한자 표기로는 ‘혼식(混式)’이라고 한다.
한글과 그 이외의 문자 모두,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폰트 페어링하는 케이스도 있고,
아주 세밀하게 두가지 이상의 폰트를 섞어서 사용하는 케이스도 있다. 예컨대 한자 등이 섞이는 편집 디자인의 경우,
한글과 라틴, 한자 이렇게 따로 다른 폰트를 적용하기도 한다. 위화감이 없도록 디자인의 조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폰트들끼리 맞추는 경우가 많지만, 되려 전혀 다른 디자인의 두 가지 폰트를 의도적으로 폰트 페어링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한글보다 라틴 폰트는 전각 상자 (가상 바디) 안에 자면을 차지하는 비율이 작기 때문에 한글에 맞춰 사이즈를 조금 키워줘야 하거나,
한글의 모임꼴 구조와 더 조화롭게 문장이 짜이도록 베이스라인 조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폰트의 종류나 디자인방식, 디자이너의 가치관에 따라서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출처 : https://helpx.adobe.com/kr/fonts/using/multiscript-typesetting.html
1. 인더그래픽스 <종시>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인더그래픽스입니다.
Q. 디자인하신 작업물의 제목과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목 : 종시>
한글은 우리의 삶을 다각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윤동주의 미발표 산문 '종시'를 주제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 속에서 한국어와 한글을 지키고, 이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유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윤동주가 묘사한 당시대의 거리의 풍경을 모아 길이 순환하듯 콜라주(collage)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종점이 시점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 라는 삶의 반복성에 주목하여 순환되는 삶을 원형 그래픽 요소와, 어느 방향에서도 읽을 수 있는
텍스트 배치를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Q. 각 폰트를 선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점과 종점은 상반된 의미이지만 작품 내에서는 연결되어 표현됩니다. 그런 점이 대비되는 시각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SM견출명조와 SM견출고딕과 닮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직지소프트의 국문폰트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혹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직지소프트는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도 높은 폰트로 구성되어있으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려되어 디자인적인 요소 뿐 아니라 기능적인 요소로서도 사용하기에 용이합니다.
Q.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부딪혀서 얻은 각자의 방법이 섞어짜기 의 수많은 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국문 섞어짜기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폰트를 사용할 때에는 시각물 속 의미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지를 고려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글날을 맞이하여 디자이너로서 어떤 태도로 한글을 대하고 다루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한글의 창제는 많은 이들이 배우고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저희가 하는 작업 역시 하나의 매개체로, 느끼고 전하고 싶은 내용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직지소프트와의 협업 기회로 한글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기능성을 존중하며 한글작업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이지현 담당자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디자인 : 인더그래픽스 @inthe.graphics
출처 : 윤동주 <종시>
2. studio gomin <헤어질 결심: 홍산오의 대사>
<SM세명조> | <SM중명조> | <SM3견출고딕> | <SM3견출명조>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서울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업으로 하고 있는 studio gomin의 이영하입니다.
Q. 디자인하신 작업물의 제목과 설명 부탁드립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홍산오의 대사입니다. 영화 속 여러 문학적인 대사 중에서 이 대사가 특히 흥미로웠던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독특한 언어적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 너 땜에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는 대사는 두 개의 대칭적인 문장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문장인 “나 너 땜에 고생깨나 했지만” 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어지는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는
긍정적인 의미로 전환됩니다. 이처럼 대립되는 의미 사이의 리듬은 한 문장 안에서 마치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독특한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홍산오의 대사는 자연스러운 구어체를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본질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의 전환은 그의 간결한 언어 속에서 더 큰 울림을 전달하며, 한글 특유의 독특한 질감을 흥미롭게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섞어짜기’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았는데, 이는 복잡한 감정이 서로 얽히고 풀리는 과정과도 닮았습니다.
Q. 각 폰트를 선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주 사용하는 SM클래식계열의 폰트들을 사용해보았습니다. ‘나 너 땜에’라는 연약하고 처량한 감정에는 SM세명조, ‘고생깨나 했지만’, ‘요렇게 좀’이라는 우쭐하고 거센 감정에는 SM3견출고딕, ‘내 인생 공허했다’라는 쑥스러운 솔직한 감정에는 크기 변화를 준 SM3견출명조를, 담백한 사실 전달에는 SM3중명조를 선정했습니다.
Q.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직지소프트의 국문폰트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혹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직지소프트의 간결하면서 고전적인 미가 살아있는 서체들을 사랑합니다. 항상 화이팅입니다.
Q.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부딪혀서 얻은 각자의 방법이 섞어짜기 의 수많은 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국문 섞어짜기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결국 섞어짜기도 언어 표현 방법의 하나이기에 때와 장소를 가리는 눈치가 필요합니다. 크게 말할 때와 작게 말할 때, 어떤 모양이 강한 발성인지,
약한 발성인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글날을 맞이하여 디자이너로서 어떤 태도로 한글을 대하고 다루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영어나 일어나 외래어도 많이 사용하는 요즘이지만,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지 한국인에게 는 결국 의사소통의 방법은 한글이 고유의 수단입니다.
소중히 다뤄서 잘 발전시켜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출처 : 영화 <헤어질 결심>
3. 채병록 <한글날 578돌>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CBR은 ‘축적’과 ‘중첩’을 작품의 모티프로 삼아 전통, 근대적인 오브제 또는 ‘한국적인’ 아이덴티티를 기반으로 현대적 미감을 찾아내는 그래픽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경험, 문명, 지식, 관계 등 형태와 질감을 통해 형성되고 변화하며 발전해 나가는 작업 방식을 보여줍니다. 밀도 높게 생성해 낸 모든 요소는 겹치고, 쌓이고, 퍼지는 현상을 CBR의 축적된 기억들로 조합하고 엮어내며 시각화합니다.
현재 AGI(Alliance Graphique Internationale) 멤버이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나이키, 스타벅스 등 여러 문화 단체나 기업과의 협업 활동을 비롯하여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디자인 강의 등을 맡아 진행하기도 합니다.
Q. 디자인하신 작업물의 제목과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목 : 한글날 578돌>
1966년에 발행되었던 세종대왕 기념 우표의 그래픽을 모티프로 직지소프트의 SM3견출명조와 SM3견출고딕으로 겹겹으로 쌓여 작업하였습니다.
Q. 각 폰트를 선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 시절부터 사용하고 타이포그래피를 배웠던 서체들입니다. 한동안 새로운 서체들을 사용하여 지난 향수의 기억으로 다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획이 굵은 서체를 애용하고 제목용의 고딕과 명조의 대비를 묵직한 점으로 생각하고 쌓아 올렸습니다.
Q.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직지소프트의 국문폰트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혹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클래식하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신뢰를 주는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편입니다.
특별히 아쉬운 점은 없고 좋은 서체의 지속적인 개발과 기존의 것을 다듬고 보완해 주길 바랍니다.
Q.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부딪혀서 얻은 각자의 방법이 섞어짜기 의 수많은 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국문 섞어짜기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주 본질적인 얘기지만 글자 무게의 균형을 맞추는데 집중합니다.
큰 대지의 작업을 주로 하는 편이라 저에게 있어 섞어짜기는 무게가 비슷한 작은 돌들을 가지런히 정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글날을 맞이하여 디자이너로서 어떤 태도로 한글을 대하고 다루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사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읽히는 부분에 있어 어색하게 느끼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한글을 다룰 수 있고 한글로 디자인할 수 있는 것에 뿌듯합니다.
디자인 : 채병록 @chae_byungrok
출처 : 1966년 발행 세종대왕 우표
4. 사각프레스 <무제>
<SM3신중고딕> | <SM순명조> | <J소예> | <J글월>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최지선 입니다. 광주광역시에서 사각프레스 라는 활동명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입니다.
Q. 디자인하신 작업물의 제목과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목은 ‘무제’ 입니다. 이 디자인에 사용된 글이 돋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목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글로 남긴 기록보다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사진첩의 사진들을 보며 과거의 어떤 특별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디자인의 소재가 된 이 글은 포에트리 인덱스 라는 장르로 이서영 시인의 책 『네가 이 세상의 후렴이 될 때』(2023) 중 「희망에 대해 말씀 드리지요」 29쪽에서 발췌해 왔습니다.
이 문장이 기억에 대해 잘 풀어낸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했습니다.
글이 잘 돋보이게 최소한의 요소로 작업을 했으며, 사진, 시간, 책(또는 기록)을 키워드로 작업을 했습니다.
Q. 각 폰트를 선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글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정적인 느낌을 주는 폰트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SM3신중고딕을 사용했으며 포인트로 느껴지는 단어에 SM순명조, J소예, J글월을 사용했습니다.
Q.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직지소프트의 국문폰트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혹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클래식 시리즈를 사용하기 위해 직지소프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그래픽 시리즈도 애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J소예'체를 좋아합니다. 손 글씨-명조체 계열을 좋아해서요. 그래픽 시리즈 중에 'J쥬키니'나 'J라일락'도 좋아합니다.
Q.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부딪혀서 얻은 각자의 방법이 섞어짜기 의 수많은 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국문 섞어짜기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대 2~3종류의 폰트 정도만 섞어 쓰고, 폰트 선택은 글의 분위기에 따라 다를것 같습니다.
폰트마다 크기가 달라서 크기 조절이나 기준선, 자간 등 미세 조정이 필요한데 계속 붙잡아 두진 않고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끝내는 편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한글날을 맞이하여 디자이너로서 어떤 태도로 한글을 대하고 다루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모어(母語)라서 가장 친근한 언어이지만 막상 작업할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앞으로 제목을 한글로 많이 사용하는 사례가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디자인 : 사각프레스 @sagak_press
출처 : 이서영(2023), 『네가 이 세상의 후렴이 될 때』, 유미주의
5. 북극섬 <흰>
<J하얀마음> | <J출판명조> | <J탈네모> | <J빨간구두> | <SM세명조> | <SM중명조>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디자인 스튜디오 북극섬입니다. 담담하나 표현을 지향합니다.
Q. 디자인하신 작업물의 제목과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목은 "흰"이고 한강의 《흰》에서 따왔습니다. 몇 년 전 읽은 이 소설은 기억 속에 하나의 장면으로 남아 있는데요.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 흰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서 있다. 하얀 천으로 아기를 감싸안고. 아기를 보는 여자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주변이 온통 하얗다.'
이 장면이 주는 슬픔은 오래전부터 우리가 공유해 온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슬픈지는 이방인에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형용할 수 없는 우리 안의 슬픔을 흰 것들로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소설의 도입부를 인용해
작업했습니다. 한 단어씩 읽어 내려갈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립니다.
Q. 각 폰트를 선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번 작업에는 J하얀마음, J탈네모, J출판명조, J빨간구두, SM세명조, SM중명조 총 6가지 서체를 사용했습니다. J하얀마음은 서체의 이름처럼 순수하고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어 강보와 배내옷에, 환경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가지는 소금, 눈, 얼음, 달에는 역시 변화에 능한 서체인 J탈네모를 사용했어요. 기능적으로 닮아있으니, 어딘지 단어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J출판명조도 비슷한 맥락으로 신문과 같이 텍스트가 많은 지면에서 고른 속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설계된 특징들이 보이는데, 어쩐지 어느 한 알 특출남 없이 쌀알의 군집이 쌀인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J빨간 구두의 경우 아마 조금 도도한 뉘앙스를 주고 싶었던 기획 의도가 이름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런 점이 오히려 파도부터 백발까지의 단어들과 어울렸습니다. 백색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단어들이니 물들지 않도록 뻣뻣하지는 않지만 꼿꼿해야 할 것 같아서요. 마지막으로 수의의 SM세명조는 엄숙하나 무겁지 않은 뉘앙스로 선정하였고 이어지는 글에는 줄 글에 사용하기 좋은 SM중명조를 사용했습니다.
Q.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직지소프트의 국문폰트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직지의 서체들이 가지는 표정은 어떤 언어를 전해도 그에 맞추어 변하는 특징을 가진 것 같습니다. 엄숙한 글엔 엄숙하게,
경쾌한 글엔 경쾌하게 읽히는 것 같아요. 달리 말하면 중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주제에 따라 도드라지는 특징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부딪혀서 얻은 각자의 방법이 섞어짜기 의 수많은 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국문 섞어짜기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국문 섞어짜기를 할 때 많은 경우에 국문이 아닌 영문이 주도권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 중 첫째는 영문 알파벳이 가진 간결한 탓이고
둘째는 우리가 익숙히 보아온 국문 서체들의 필획 논리와는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섞어짜기 할 때 한글은 얼굴이고 영문은 표정이라고 생각하고 조합을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얼굴을 볼 때도 얼굴이 부드럽냐 험상궂냐도 보지만 표정이 밝은지 어두운지가 인상에 더 큰 영향을 주니까요.
이런 기준을 가지고 보면 섞어 짜는 서체 간의 유사성이 중요하지는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회색도가 유사하도록 짜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글날을 맞이하여 디자이너로서 어떤 태도로 한글을 대하고 다루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어떤 민족의 미감은 문자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언어가 고대로부터 서서히 발전한 것에 비해 한글은 어느 날 뚝 떨어졌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발명된 문자인 데다가 언어로서가 아니라 형태로서의 한글을 주목하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어요. 좀 더 기민하게 언어와 형태를 다루는 디자이너들이 한글의 다양한 형태를 발견하고 알려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 : 북극섬 @arctic.isle
편집 : 김예은
출처 : 한강(2018), 『흰』, 문학동네
6. 아페퍼 <왜 흔들리는 목소리를 갖게 됐을까>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아페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희정입니다. 이런저런 그래픽 작업들을 하고, 요즘은 전시와 관련된 인쇄물을 주로 만들고 있습니다.
Q. 디자인하신 작업물의 제목과 설명 부탁드립니다.
“왜 흔들리는 목소리를 갖게 됐을까”는 안미옥 시인의 시, 「순간적」에서 가져왔습니다. 서툰 모습과 흔들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굴려 가는 시 자체에 마음이 갔고요. 그중 이 문장이 눈에 밟혔어요.
Q. 각 폰트를 선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SM신중고딕과 J글월을 사용했습니다. 가볍고 단단한 글자 조합이 필요했어요. 하나는 조금 더 견고한 글자로, 그리고 하나는 조금 더 손길이 느껴지는 글자로요.
Q.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직지소프트의 국문폰트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혹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SM클래식 서체들에 손이 많이 가는데, 중립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감정이 덜 섞여 있으면서 잔잔하고, 느끼하거나 둔하지도 않아서 쓰기가
편해요.
클래식 서체 안에서도 다들 미세하게 어투와 표정이 달라서, 작업의 소재와 어울리는 서체의 합을 맞추기가 편하게 느껴집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더 많은 클래식 서체 선택지들이 있기를 바라는 건 사용자의 욕심이겠죠?
Q.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부딪혀서 얻은 각자의 방법이 섞어짜기 의 수많은 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국문 섞어짜기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껏 저는 국·영문 섞어짜기만 해왔더라고요. (!) 이번 작업으로 국문 섞어짜기의 첫 시도를 해봤는데 재밌었어요. 종종 써 볼게요.
Q. 마지막으로 한글날을 맞이하여 디자이너로서 어떤 태도로 한글을 대하고 다루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의도에 맞도록, 다루는 소재와 잘 맞아 떨어지도록,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잘 읽히게끔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하며 한글을 대해요.
안정적으로 서체를 활용하는 사용자가 되어 가고 싶습니다. 유연해지고도 싶고요.
디자인 : 아페퍼 @ap3pp3r
출처 : 안미옥(2023),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문학동네
서로 다른 폰트 간의 좋은 조화를 찾기 위해서는 글자를 뜯어보고, 이해하고 테스트하는 과정들을 거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국문 폰트의 매력과 섞어짜기의 매력을 시각물로 전달하는 것 또한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한글을 기념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아닐까요?
언어로서 충실했던 과거에서 더 나아가 한글이라는 문자 자체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이러한 조화로움을 찾아가는 과정이 디자이너 개인의 전유물이 아닌 또 다른 분야에서 누군가에게는 가이드가 되기도,
혹은 영감의 원천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기획 직지소프트 기획팀
글.편집 이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