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폰트
[폰트이야기]붓의 부드러운 운동감과 독특한 텍스처, 이주현의 새로운 한글 서체 <범나비>


2023.08.25.






"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갈 때의

'붓'의 소프트한 움직임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조판했을 때 지면에서 느껴지는 '텍스처'는

나비의 날개 무늬처럼 패턴을 형성합니다."




최근 일곱 번째 한글글꼴창작지원사업 결과물

<범나비 프레젠테이션> 전시를 성황리에 마친

서체 디자이너 이주현.


그가 그리는 서체와 닮아

유려하고도 곧은 모습이 엿보이는 이주현 디자이너.

글자 그리고 <범나비>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01

폰트 디자이너 이주현




🎤 안녕하세요, 이주현 디자이너님.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코스모프타입을 운영하는 타입 디자이너 이주현입니다. 레터링과 폰트 작업을 하고 있으며, 온/오프라인 강의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 1인 폰트 스튜디오 '코스모프타입'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스튜디오에 대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스튜디오에서는 주로 자체 제작한 폰트를 판매하거나 의뢰받아 글꼴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포치니' 폰트를 만들어 판매 중이고, 향후 범나비를 포함한 다양한 폰트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정기적으로 글꼴 관련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어요. 




🎤 디자인 업무를 제외하고 삶을 지탱해주는 취미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하루 한 잔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 업무 시작 전 한 잔이 루틴처럼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카페인이 흡수되면 집중이 잘 되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요. 산책과 요가도 삶을 지탱해주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반려견이 있어서 산책을 매일 하게 돼요. 가볍게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걱정도 털어버리는 편입니다.








02

이주현과 범나비




전시, wrm space에서의 <범나비 프레젠테이션>, 2023


🎤 얼마 전 일곱 번째 한글글꼴창작지원사업 결과물인 <범나비>를 출시하셨어요. <범나비>는 어떤 서체인가요?


범나비는 한글 반 흘림체로 인해 만들어지는 지면의 텍스처를 보고 영감을 받은 서체입니다. 한글 반 흘림체에서 볼 수 있는 반복되는 사선 요소를 모티브로 하고 있어요. 반흘림체의 분위기를 가로쓰기로 옮겨오면서 안정적인 판독성과 새로운 질감를 가진 현대적인 폰트로 재해석한 서체입니다. 웨이트는 현재 5~6개 정도로 계획하고 있고, 이번 전시에서는 가장 얇은 Light를 중심으로 하고, 가장 두꺼운 Black도 일부 선보였습니다.




🎤 글꼴의 이름을 지은 이유와 제작 계기, 기획단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서체의 독특한 텍스처를 바로 떠올릴만한 이름으로 짓고 싶었습니다. 맘에 드는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해왔는데, 범나비(호랑나비)가 가진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텍스처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갈 때 '붓'의 소프트한 움직임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조판했을 때 지면에서 느껴지는 '텍스처'는 나비의 날개 무늬처럼 패턴을 형성합니다. 부드러운 운동감과 독특한 텍스처가 닮아 있어 범나비로 네이밍 하게 되었습니다.




<범나비>의 자소특징


🎤 <범나비>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 또는 뽐내고 싶은 특징을 꼽아주신다면?


붓글씨의 특징을 반영한 부분이 있는데, 비교적 색다른 느낌이지만, 읽었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ㄴ, ㄷ 등의 꺾임, 굴린 부분이나 초성 ㄱ을 둥글게 처리한 부분 등이 해당합니다. 또 범나비에는 사선요소가 전체적으로 들어가 있는데, 긴 문장을 썼을 때 반복되는 사선 요소가 느껴지면 독특한 분위기를 줍니다.







전시, wrm space에서의 <범나비 프레젠테이션>의 팬그램 포스터, 2023


🎤 wrm space에서 지난 8/3 - 8/13, 10일의 기간 동안 전시를 진행하셨어요! 해당 전시에서는 <범나비>만의 팬그램 문장을 만드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문장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전시의 형태로 서체를 보여줘야 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폰트 디자인 씬에 있는 '팬그램' 문화를 소개하면 관람객이 좀 더 글꼴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비의 생애와 주요 특징에 대한 텍스트를 읽고 상상력을 촉발하는 상황들을 추려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닿자를 넣으면서도 문장을 자연스럽게 구성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는데, 완성된 문장을 읽다 보면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주황색과 핑크색 포스터에는 ㄱ부터 ㅎ까지를 모두 넣었습니다. 금색과 하늘색 포스터에는 쌍닿자(ㄲ, ㄸ, ㅃ, ㅆ, ㅉ) 다섯 개까지 넣었습니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팬그램 설명해 드리니 좀 더 자세히 살펴보시더라고요.







<범나비>의 작업 및 수정 과정, 2023


🎤 <범나비> 프레젠테이션 전시에서는 서체를 제작하시면서 수 없이 고민하고 수정하신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용 폰트를 제작하시면서 중점적으로 수정하신 부분이 있다면?


본문용이라는 용도에 대한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했던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취향과 해석을 표현하면서도 긴 텍스트에서, 다수의 눈에도 만족스러운 형태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받침 ㄴ은 개성이 강한 편이라 똑바로 세운 형태도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개성과 본문용은 양립할 수 없는가에 대해 나름의 도전을 해본 것 같아요. 다양한 각도, 디테일을 테스트해 보며 지금의 형태로 마무리했습니다.




<범나비>의 수정 과정, 2023


🎤 <범나비> 제작 중 어려웠던 부분이 있으셨나요? 어려움을 극복하신 과정이나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세로쓰기의 조형 요소를 가로쓰기로 옮겨오면서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참고했던 자료를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관찰하면서, 세로쓰기에서의 글자 크기와 비율, 시각 보정 등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조형 요소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요소를 가로쓰기용에 어울리도록 테스트했습니다. 크기, 비율, 시각 중심, 흐름 등 가로쓰기용 본문체로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혼자만의 실험도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을 많이 구했던 것 같아요. 특히 같이 일했던 분들이나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전시, <범나비 프레젠테이션> 포스터, 2023


🎤 2년 동안 공들여 작업하신 <범나비>. 어떻게 쓰이기를 기대하시나요? 


전시 포스터에서도 의도한 부분이 있는데, 한국적인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본문용으로도 물론 쓰임을 기대하지만, 써본 분들은 디스플레이용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폰트를 사용하는 분의 상상력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곳에서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저도 얼른 <범나비>를 써 보고 싶은데요. 추후 범나비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


향후 계획은 최소 2~3종 정도 우선 만든 후 출시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가장 얇은 Light와 가장 굵은 Black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올해 1차 출시가 목표라 최선을 다해 일정을 맞추려고 합니다.








03

이주현의 지금




🎤 서체를 제작하시면서 영감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여행 갔던 곳의 간판, 길을 걷다가 만난 희한한 모양의 낙서, 지인의 손글씨, 오래된 책 등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작업에 몰두하지 않고, 휴식하거나 힘을 빼고 있을 때 오히려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 눈여겨보는 서체 디자이너 또는 스튜디오나 기업이 있으시다면?


최근엔 fttg 스튜디오의 작업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서 협업한 fttg 스튜디오의 김지혜 디자이너와 종종 만나면서 디자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어요. 오래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색감을 정말 잘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색감을 잘 뽑아서 감탄하며 작업했습니다.




<범나비>의 스케치 이미지, 2023


🎤 손 스케치와 디지털 작업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밑그림이 필요할 땐 무조건 손 스케치를 진행합니다. 손으로 했을 때 느낌을 빠르게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작업 초기에 대부분은 손 스케치를 진행하는 것 같아요. 또 작업 중간중간 수정할 때도 빠르게 스케치해 보기도 합니다. 디지털 작업의 비중이 물론 훨씬 높지만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손 스케치 작업이기 때문에 중요도는 거의 비슷할 것 같아요.







ELLE, <Please Stay> 레터링, 2023


🎤 폰트 작업 이외에도 레터링 작업을 자주 선보이시는데, 기억에 남는 레터링 작업을 꼽아주신다면?


최근에 ELLE 매거진의 <Please Stay> 칼럼에 들어간 레터링 작업을 흥미롭게 작업한 기억이 납니다. 저에겐 생소한 주제였는데, 작업하면서 알게 된 것도 많았습니다. 멸종 위기 동물들의 생김새와 이름을 찾아보게 되었고, 이름을 그리면서 차분하게 기후 위기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도 되었습니다.


전체를 손 스케치로 하면서 개인적으로 색다른 시도였던 것 같아요.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도 SNS에 올려놓았어요. 레터링 작업을 보며 누군가도 멸종 위기 동물과 기후 위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꾸준히 한글 서체 제작 실무 워크숍을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운영하시면서 느끼시는 소감이나 재미있는 부분을 공유해주신다면? 또, 다음 워크숍은 언제쯤일까요?


9월에 시작하는 레터링 워크숍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워크숍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좋아요. 사람들의 요즘 생각을 알게 되어 저도 자극받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워크숍에서 글꼴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어떤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서체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글꼴을 좋아하는 마음과 호기심, 지속적인 관심, 꾸준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을 해오면서 디자인 잘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지만,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거나 좋아하지 않으면 오래 못하는 것 같아요. 폰트를 만드는 건 호흡이 긴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느리더라도, 애정과 꾸준함이 있다면 서체 디자이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범나비>의 디지털 작업과정, 2023


🎤 서체 디자인을 시작하는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추천하는 습관이 있다면?


시도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확실한 길인 것 같아요. 방에 틀어박혀 글자만 만들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예요.




🎤 좋은 서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도 좋은 서체가 많고, 계속해서 새로운 서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잖아요. 좋은 폰트의 기준도 매우 다양한 것 같아요.


저는 완성도 높으면서도 차별화 포인트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이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면서 서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04

이주현의 다음




🎤 앞으로의 방향과 목표는?


생각하고 있는 폰트들을 만들어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스케치만 있는 작업, 어려움에 부딪혔던 작업, 파생하다가 멈췄던 작업 등 조금씩 틈틈이 해오던 것들이 있는데 시간을 쏟아서 모두 만들어보고 싶어요. 물론 범나비도 얼른 출시하고 싶고요.




<범나비> 세로쓰기, 2023


🎤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만들어보고 싶은 서체가 있다면?


범나비를 작업하면서 세로쓰기용 폰트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어요. 범나비 세로쓰기용 폰트는 아직 시도 중인데, 세로쓰기 했을 때만 가능한 특징들을 넣어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어쓰기라든지, 자폭이나 구조가 각기 다르다든지 하는 특징들이요. 세로쓰기 폰트의 시장성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시도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이야기


많은 분께 작업 소식을 꾸준히 전하고 싶습니다. 범나비도 앞으로 나올 폰트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주현 디자이너의 <한글 레터링 워크숍>

🔗자세한 내용은 하단 인스타그램 프로필링크에서!







디자이너 이주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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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e.eeu

🔗 @cosmopetype






인터뷰 : 이주현

자료 제공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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