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4.
[크리에이터를 만나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직지멤버십 회원의 브랜드 철학과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소개합니다.
" 작업 과정에서 파생되는 리서치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이때 텍스트를 많이 참조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어느 정도 있고 내용이 다방면으로 살펴볼 구석이 있는 것이라면
주제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사전적 의미부터 인물, 역사적 흐름, 관련 출판물, 연결된 사건들 등과 같은 것을
꼬리물기 식으로 확장해 나갑니다. 이후 이러한 단서들을 하나의 주제의식 아래 연결 지어 네러티브를 만든 후
시각 결과물을 제안하면 작업을 설명하는 배경이 풍성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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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아름다운 한국 책 디자인 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오혜진.
촘촘한 리서치를 통한 시각화,
본인의 방법론을 적용한 견고한 맥락이 담긴 시각 결과물은,
늘 그의 행보를 주목하게 합니다.
오혜진 디자이너와 진솔하고 담백한 디자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홈페이지, ohezin.kr
01
그래픽 디자이너 오혜진
Q 안녕하세요, 오혜진 디자이너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시각 언어를 바탕으로 한 여러 활동에 관심을 가지며 그래픽 디자이너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Q 다양한 관심사를 통해 방법론을 만들고 디자인에 적용하시는데 어디에서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특히 관심을 두고 계시거나 빠져있는 것이 있나요?
요즘 사진이 많이 들어가는 책을 만들고 있는데, 같은 사진이더라도 페이지네이션을 어떻게 할지, 크기와 흐름을 어떻게 다룰지에 따라 전혀 다른 뉘앙스로 전달될 수 있어서 이미지를 다루는 방법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중입니다. 그중에서도 한컷 한컷 프레임이 이어지며 네러티브를 생성하는 영화야말로 이미지를 다루는 것에 관해 살펴볼 만한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보여서 틈틈이 다양한 방법론을 참조해보기 위해 영화 편집에 대한 글 등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Q 꾸준히 개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본인만의 작업 흐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또 작업의 마무리 단계에서 '완성했다'라고 결정하시게 되는 지점은 언제인가요?
구체적인 시각화 작업에 앞서 내용에서 파생되는 다방면의 리서치 과정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픽 디자인이 내용과 연결된 기능으로서 작동한다는 지점 때문에 직업으로서 피곤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반면 좋다고 느끼는 지점은 매번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거기서 파생되는 리서치를 통해 지식도 얻고 사회의 여러 가지 면모들을 배운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작업을 마치게 되는 기준은 어느 정도의 균형감을 통해 더 이상 스케치 수준은 아니라고 느낄 때도 있긴 하지만 사실 완성했다고 느끼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저는 속도가 느리고 작업을 꽤 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편이라…. 시간이 있으면 있는 만큼 계속하게 되어서 늘 마감 날짜가 완성을 결정해주는 것 같아요.
Q 디자인 하시면서 가장 애정을 갖고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앞서 드린 답변처럼 작업 과정에서 파생되는 리서치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이때 텍스트를 많이 참조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어느 정도 있고 내용이 다방면으로 살펴볼 구석이 있는 것이라면 주제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사전적 의미부터 인물, 역사적 흐름, 관련 출판물, 연결된 사건들 등과 같은 것을 꼬리물기 식으로 확장해 나갑니다. 이후 이러한 단서들을 하나의 주제의식 아래 연결 지어 네러티브를 만든 후 시각 결과물을 제안하면 작업을 설명하는 배경이 풍성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익숙함이 생기기 마련인데 어떤 면에선 능숙해지기 때문에 효율적일 때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권태로움에 휩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리서치를 다방면으로 해가며 작업을 전개하면 언제나 몰랐던 것을 배우게 되고,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내가 모르는 게 많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며 전혀 지겹지 않고 오히려 해보고 싶은 게 많아진다고 느껴집니다.
책, <초과 issue 10>, 2022
Q 최근 선보이신 작업에 관한 질문에 앞서 지난 작업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지금까지 작업하신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거나 좋았던 작업은 무엇인가요?
좋았던 작업이 많은 편이라 무언가를 가장 좋다고 꼽기는 어렵습니다만 <초과 issue 10>이 기억에 남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앞서 말한 작업을 전개할 때 텍스트를 참조하는 방법을 맨 처음 시도해보게 된 작업이었습니다. 초과는 하나의 한국어 시를 여러명의 번역가가 영어로 번역을 해보는 모임인데요, 10번째 이슈를 기념해 멤버들의 에세이를 수록하는 책을 의뢰받아 진행하게 되었었습니다.
당시 루이뤼티의 <In/In> 이라는 글을 우연히 읽은 것이 북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해당 글에서 루이뤼티는 다국어 사용자들은 두 언어가 하나의 지면에 함께 있으면 한 언어만 쭉 읽는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두 언어를 오가면서 읽게 된다는 말을 했는데, 그렇다면 이 책에도 모든 글이 한-영이 함께 들어가니 다국어 사용자들이 두 언어를 오가며 읽는 다양한 상황을 상상하며 디자인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초과가 하나의 출발점을 바탕으로 다수의 결과물을 낸다는 부분에서 힌트를 얻어, 주어진 판형 내에서 한-영의 레이아웃을 다양하게 해보자는 의도로 매 에세이마다 다른 레이아웃의 내지를 디자인하였습니다.
이러한 리서치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글들이 조금씩 쌓여가던 차에, 올 6월에는 wrm에서 진행하는 릴레이 서재의 4번째 전시에 초대되었습니다. 4칸짜리 서재 1개를 자유롭게 구성하는 것이 조건이었는데 최근 작업과 연결되어 꼬리 물기식으로 읽었거나 읽으려 하는 책들을 느슨하게 나열하여 전시를 꾸렸었습니다.
02
오혜진의 지금
전시, 과천 MMCA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각주>의 <미술관 읽기>, 2023
사진: 김주영(스튜디오 밀리언로지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Q 디자이너님은 전시 그래픽 아이덴티티, 책 위주의 작업 등의 평면 또는 지면을 다루는 작업을 주로 해오셨는데, 이번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각주>의 참여 작에서는 디자인이 놓이는 곳의 크기가 개념적, 물리적으로 변화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해당 전시에는 미술관을 둘러싼 시공간 정보를 주제로 다루는 <미술관 읽기>라는 작품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짚어주신대로 종이에 비하면 꽤 스케일감이 커진 터라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그래서 재료라던가, 설치 등에 관해 흥미롭게 화두를 갖게 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평소 종이 지면에서 작업할 때는 대부분 오프셋 인쇄나 리소 인쇄 두 가지 방식을 택했는데 이 경우 결과물의 크기가 아무리 커봐야 1m를 넘지 않고, 작업을 보는 가시거리도 가까운 편이라 작은 디테일까지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데요, 전시장처럼 서서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할 때면 거리감이 상당히 멀어지게 되므로 작품 내부의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규모감이나 분위기, 인상을 우선으로 하게 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시장의 가벽을 종이 지면 삼아 작품을 배치하고 크기를 결정하려 해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종이 지면과 공간 지면은 절대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나 물리적인 거리감으로 보였는데요. 천장의 높이, 벽과 벽 사이 등의 거리감에 따른 원근감을 통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호흡을 꽤 많이 늘려줄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전시, 과천 MMCA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각주>의 <미술관 읽기>의 전시기간 영상, 2023
Q ≪젊은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각주≫의 첫 번째 작업인 <전시 기간>은 "그래픽 디자인은 인스타그램 스토리"라며 던졌던 자조적 농담에서 비롯되었다는 텍스트를 읽어보았습니다. 생산하고, 소비되는 속도가 빠른 그래픽 디자인 씬에서는 휘발되는 그래픽 디자인의 요즘의 특성을 생각하며 디자인하셨다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작품 <전시 기간>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의 과거의 오늘 기능을 참조해, 과거의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던 전시의 포스터 이미지를 재가공하여 현재의 오늘로 소환해 오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날짜에 따라 스크린에 나오는 그래픽이 달라서 방문하는 날짜에 따라 다른 형태의 그래픽을 감상하게 됩니다. 저는 아이디어를 내기까지 속도가 무척 느리고 스케치도 많이 하는 편이라 작은 엽서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에 반해 소비되는 속도는 너무 빠르고, 특히나 SNS가 일상이 되면서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이미지가 쏟아지다 보니 새로운 작업을 업로드해도 며칠만 지나면 오래전 작업 같은 감각이 느껴졌어요. 이런 경향은 전시나 시즌 그래픽 등과 같이 일시적인 기간 내에 벌어지는 무언가를 위한 작업일 때 특히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생각되는 차 떠올리게 된 작업이었습니다.
책, <l’idiot utile (유용한 바보들): issue 0>, 2022
Q 디자인하신 <l’idiot utile (유용한 바보들): issue 0>이 얼마 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었어요. 축하드립니다!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진행하신 작업으로 알고 있는데, 긴 기간 동안 원거리에서 해외 작업자들과 협업하시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요?
번역기를 활용하는 기술이 늘었습니다! 하하…. 저는 캐주얼한 영어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만 쭉 살았던 터라 정교하고 깊이 있는 작업적 대화를 수월하게 하기는 어려움이 있어, 매번 구글 번역의 도움을 받아 이메일을 작성했습니다. (이 책 작업이 만 2년 정도 걸렸는데 그사이 정말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메일을 한 번 쓸 때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 또한 이 책은 페이지에 따라 종이나 잉크 등이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이 다소 있어 인쇄소에 사양을 전달하는 데에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책 배열표와 모든 페이지의 사양이 작성된 문서를 따로 만들어 함께 전달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책의 의뢰인인 유베르 크라비에르라는 친구가 저 대신 벨기에로 건너가 인쇄 감리를 진행하였고 실시간으로 사진과 영상을 전달받았습니다. 다음 호를 만들때에는 제작과정을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Korean Society of Typography) 뉴스레터, 『KST 통신』 2호, 2023
Q 한국표준시각(KST, Korean Standard Time)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동시대 디자이너/디자인 업종 종사자를 조망하는 뉴스레터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계십니다. 저 또한 『KST통신』의 구독자인데요, 뉴스레터의 발행 계기나 취지는 무엇인가요?
『
KST 통신』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활동에서 파생된 것으로 신덕호 디자이너와 함께 기획 및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시간을 뜻하는
Korean Standard Time의 약자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Korean Society of Typography)의 약자와 같다는 점에서 착안해 이름 짓게 되었습니다. 타이포그라피를 둘러싼 화두를 자유롭게 여러 시간대의 사람들과 다뤄보자는 취지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총
6호까지를 목표로 현재
2호까지 발행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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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직지소프트와 오혜진
SM신신명조, 책, <젊은 건축가: 질색, 불만 그리고 일상>, 2019
SM신신명조, 전시, <틱톡>, 2019
Q 직지폰트 아카이브 계정에 <공간탐색: 집>, <출판도시 인문 학당 2021>으로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두 작업을 포함하여 직지폰트를 사용한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과 그 작업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9년, sm신신명조를 활용해 전시 ≪틱톡≫의 그래픽 디자인과 <젊은 건축가 : 질색, 불만 그리고 일상>의 북 디자인을 진행했었습니다.
틱톡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틱톡≫은 독립 큐레이터 유은순이 2019년 기획한 전시였는데요, 거칠게 말하자면 일반적인 정상으로 간주하는 일상에서 질병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함께 마주하고 있는 삶에 관한 전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시각언어에 비유해보자면, 가독성 높은 읽기 쉬운 상태의 조판 위를 불규칙하게 침범하는 어떤 요소가 드러나는 형태로 전시 디자인을 하면 어떨까 싶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었습니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는 가독성이 높은 신신명조와 panama를 섞어 짜서 전시정보를 나열한 후, 전시 명, 작가명, 전시 기간, 전시 장소 등의 정보 사이사이를 beretta sans로 표기한 영문 전시 명이 랜덤하게 삽입되는 형식으로 작업을 전개해보았었습니다.
Q 현재 존재하거나 알고 계시지 않지만, 만약 있다면 디자인에 활용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서체가 있으실까요?
가끔 딩벳폰트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가 있는데 마땅히 마음에 드는 것을 지금까지 못 찾아서 써본 적이 없습니다.
Q 그래픽 디자인에 활용하기 좋은 서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딘가에서는 안 어울리는 서체가 기획과 아이디어에 따라, 다른 곳에서는 잘 어울리는 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서체가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좋은 기회에 지면을 할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자이너 오혜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