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2
[크리에이터를 만나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직지멤버십 회원의 브랜드 철학과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소개합니다.
점점 사라져가던 성냥을 사람들로 하여금 소유하고 싶고 사용하고 싶게 재탄생 시킨 브랜드.
잊혀저가는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해주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이 브랜드가 궁금하다.
“ [크리에이터를 만나다] 과거와 현재의 가치를 잇는다_ 오이뮤(OIMU)”에서는 오이뮤의 철학과 함께 신소현 대표님께
그동안 진행하셨던 프로젝트들에 대해 여쭤보고 최근 좋은 반응으로 펀딩에 성공한 <색 이름 352>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오이뮤의 디자이너 신소현입니다.
오이뮤 홈페이지 회사 소개에 “과거와 현재의 가치를 잇는 디자인 활동을 하며 프로젝트를 통해 잊혀져 가는 문화적 가치와 사양화된 2차 산업을 회복시키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라고 쓰여진 소개 글을 보고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컨셉(목표)을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설정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오이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쓰임이 제한되거나 수요가 사라진 성냥이나 향, 민화, 지우개 등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서함과 삐삐, 흑백 휴대폰을 사용하며 자랐고, IMF와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겪은 부모님의 다음 세대로서, 시대가 빠르게 변하며 사라져가는 문화적 가치들이 아쉬웠습니다. ‘디자인 활동을 통해 흘러가는 문화와 물건들의 가치를 재발견한다면, 그 수명을 조금이나마 연장해볼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들이 오이뮤의 탐구영역이 되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가치를 잇는 디자인 활동”이라는 오이뮤의 브랜드의 철학에 맞는 아이템을 선정하실 때 영감을 어디서 어떻게 얻으시나요?
가방의 색깔을 어떻게 부를까 고민하던 시간은 색이름 프로젝트로 이어졌듯이, 영감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듯합니다. 우연히 시청한 성냥공장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성냥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화방에서 발견한 네모난 지우개는 지우개 프로젝트로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성냥 프로젝트
“성냥 프로젝트”를 오이뮤의 첫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이뮤 성냥 프로젝트는 1950년대부터 2010년도까지, 반세기 가량 판매됐던 유엔팔각 성냥을 생산한 유엔 상사와 협업합니다. 성냥 산업은 해방 이후에는 국내에 1,000여 개가 넘는 성냥공장이 있을 정도로 활황인 산업이었는데, 성냥의 쓰임이 점점 사라지면서 사양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사의 질곡이 담겨있는 이 물건이 지금 사라진다면 다음 세대의 친구들은 성냥을 박물관 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공장에 몇 번이고 찾아가 기획 의도를 설명드려 단종된 팔각 성냥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담은 성냥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성냥이 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다양하게 적용된 디자인은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한 성냥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성냥
오이뮤의 성냥들은 다양한 편집 샵들에서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하실 때 성냥이라는 독특한 아이템에 대한 MD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성냥이라는 제품이 시중에 판매되는 상품이 아니고 판촉용으로 배포되던 물건이기 때문에 시장가 형성부터 판매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유통에 대해서는 경험해본 적이 없어 성냥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어 홍대 일대의 편집숍을 직접 방문하며 성냥을 소개하며 다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새 성냥을 누가 써요?’ 혹은 ‘성냥을 어디에 써요?’라는 반응이 많았고, 심지어 평소 동경하던 매장에서 잡상인 취급을 당하기도 해 낙담하며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포기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내용을 정리해 편집숍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SNS를 통해 성냥 프로젝트를 계속 알렸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맙게도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편집숍들과 소비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성냥 프로젝트- ‘유엔상사’

향 프로젝트- ‘전통향방’


지우개 프로젝트- ‘화랑고무’
오이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들이 더욱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협업하신 제작 업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냥-‘유엔상사‘, 향-‘전통 향방‘, 지우개-‘화랑고무‘ 와 같이 전통성과 장인 정신을 가진 제작 업체들과 작업을 하셨는데요. 디자이너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원하는 제작 업체를 찾는 것과 그 업체와 일을 하면서 그분들의 기술과 노하우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컨셉에 효율적으로 적용되어 계획했던 결과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경험담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을 하고 어렵게 공장을 찾아가도 무척 보수적으로 응대해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생업에 매진하고 계신 와중에 변화를 해야 하거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쉽지 않은 경우들이었습니다. 화랑고무의 경우, 3년을 이사님과 끊임없이 연락을 이어가며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디자이너의 역할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터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구나’ 라고 깨달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오이뮤의 제품은 용도와 사용성 뿐만 아니라 패키지와 제품 자체가 예뻐서 구매를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이 오이뮤의 그래픽 디자인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포인트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이뮤에서 진행해온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성냥, 향, 족자 등의 제품은 필수품도, 기호품도 아닌 것들이었습니다. 이 제품들을 매력적으로 포장하기 위해서는 제품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본질적인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와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명 받지 못한 채 사양화 되어가고 있는 물건에 반짝이는 새 옷을 입혀주고 싶어 금박 후가공을 다양하게 적용하다 보니 이제는 오이뮤 제작물에 금박 후가공이 없는 것을 찾기가 힘들게 되었고, 작고 섬세하게 반짝이는 디테일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복’ 프로젝트
오이뮤의 세 번째 프로젝트인 ‘복’ 프로젝트의 경우 오이뮤의 그래픽 스타일이 잘 보이는 작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이 있으신가요?
족자의 형태가 전통적인 서화 처리법이다 보니 다양하게 디자인을 시도해 보아도 전통스러움을 벗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전통 가옥이 아니어도 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주거 환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배첩에 사용되는 비단의 색상과 띠의 색, 족자의 끈 재질 등 마감되는 모든 부분에 대한 색상과 소재를 선정하였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양식을 지키면서 족자라는 형태로 제작하기 위해 일반 인쇄용 종이가 아닌 한지 위에 인쇄를 하고 전통 기법을 적용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제작 업체에서 해오던 일반적인 일이 아닌 새로운 작업을 할 때 제작 업체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과정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실 수 있나요?
닥 섬유가 함유된 한지는 종이의 평활도가 좋지 않아 인쇄 및 후가공에 용이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지에 오프셋 인쇄를 하고, 대형 동판을 제작해 금박 후가공을 적용하였습니다. 후가공엔 12시간이 넘는 감리를 보았는데, 종이마다 섬유질이 뭉쳐있는 위치가 달라 박이 고르게 찍히지 않는 문제들이 있어 불량률이 높았습니다. 인쇄소 기장님께서 “오이뮤는 항상 별나고 어려운 것만 가져와!”라고 불평하시기도 했지만 왜 이러한 작업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장님께서도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오이뮤에서는 거의 모든 인쇄 제작 공정에서 감리를 보는데, 최대한 작업자의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감사의 말씀도 전하고, 음료수도 사 드리며 각 공정의 기술자분들과 무척 친밀한 협력 관계가 되었습니다.


‘색이름 프로젝트’, <색 이름 352> SM3견출명조, SM3태명조 사용.
최근에 진행하셨던 “색이름” 프로젝트가 텀블벅에서 무려 2079%를 달성하였습니다. [색이름 352]는 한글만이 표현할 수 있는 352가지의 색의 이름과 색에 대한 다양한 표현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준 것 같습니다. “색” 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작년 여름, 오이뮤에서 한복 소재로 제작한 노방 백의 색상 명칭으로 부를 우리말로 된 색이름을 찾다가 2006년에 출간된 ‘우리말 색이름 사전’이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외래어나 공감대가 떨어지는 색이름도 있었지만 상록수색, 심해색, 석류색, 연홍색 등 우리말로 이루어진 다양한 색이름이 담긴 내용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말 색이름 사전’의 저자 선생님을 뵙고 해당 책을 재해석해서 소개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를 설명드리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저작재산권 이용허락 계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색이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되도록 친근한 사물의 이름을 활용하면서 고유어나 한자어 위주의 우리말로 색이름을 정의하고, 그에 대응되는 문화적 공감대를 지닌 단색 그림을 수록한 책을 엮었습니다.
오이뮤에서 재해석한 (재)한국색채연구소의 ‘우리말 색이름 사전'과 한국산업표준(KSA0011, 관용색이름)에 나와있는 색 외에 오이뮤에서 추가하신 색이름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색이고 어떤 방법으로 색을 찾으셨나요?.
신설한 색이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 책에 수록된 ‘쇠가죽색’이나 ‘육색’ 등은 동물 권리 측면에서 공감대가 낮다고 판단되어 제거하였고, 베이비 핑크, 세룰리안 블루, 프렌치 그레이 등과 같이 과한 외래어 사용으로 색과 색이름 간의 1차원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는 색이름도 탈락시켰습니다. 대신 특별한 훈련 없이도 인지할 수 있는, 달고나색, 고무대야색, 누룽지색, 나팔꽃색과 같이 익숙한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색을 색이름에 적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색을 찾으시는 과정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색이름을 찾는 과정에서 나무와 풀, 꽃, 동물,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의 색깔까지, 색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다 보니 생활에 활력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팀원들과 함께 수목원으로 워크숍도 가고 생태지역도 찾아다니며 자연의 이름과 색을 살펴보았던 경험은 다채로운 영감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사물을 하나하나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색이름 책갈피

색이름 책가위(책커버)
노방천으로 제작된 책갈피와 책커버 또한 [색이름 352]와 잘 어울리면서 오이뮤스러운 구성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두 제품의 기획 의도가 있으신가요?
색이름 프로젝트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 노방 백의 색상명을 짓기 위했던 것이라, 노방 천을 활용한 책갈피를 만들면 프로젝트 시작과 접점이 되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디자인 이음과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기획한 청춘 문고 시리즈의 작가님들에게 색이름을 묘사하는 단편을 받아 책에 함께 수록하였는데, 단편의 글귀 일부를 책갈피에 자수로 새겨 색이름을 느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책커버 역시 하얀 책 표지를 보호하고, 책에 수록된 몇 가지의 색이름과 단색 그래픽을 적용해 표지를 꾸밀 수 있게 하였습니다.
색이름 프로젝트의 색상 견본을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해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셨는데요. 색상 견본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 색이름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이기 때문에 책을 구매하지 않은 분들도 색상 견본을 통해 우리말 색이름을 실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배포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번 진행될 오이뮤의 여섯 번째 프로젝트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혹시 기획 중이거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오이뮤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저희가 진행 중인 지우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점보지우개의 브랜딩을 새롭게 진행 중에 있습니다. 국민 지우개라고 불렸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국산 지우개이지만 일본, 독일 브랜드에 밀려 내수 시장은 크게 축소된 상태인데, 이번 리브랜딩 이후 점보지우개가 국내 문구 시장에서 다시 날개를 달 수 있을지 저희도 기대가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오이뮤 프로젝트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하고 계셔서 정말 바쁘실 것 같습니다. 혹시 취미나 운동, 여행 등 대표님이 일 외에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시나요?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데, 퇴근 후 늦은 밤 동네를 산책하며 길고양이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밥을 먹이는 것이 저의 작은 기쁨이자 동력입니다.
대표님께서 좋아하시는 브랜드나 디자이너가 있으신지요?
그때그때 바뀌는 것 같은데, 요즘엔 바르셀로나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Paloma wool 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합니다. 패션 아이템 위주로 사진이나 아트웍들이 매 시즌 프로젝트 성격으로 오픈되는데, 그들의 경계 없는 표현과 자유로움은 올해 저를 바르셀로나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 스튜디오를 직접 시작하시고 운영하시면서 느끼신 경험들을 바탕으로 조언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크고 작은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로서 살아가던 삶도 나쁘지 않았지만 조금 더 모험심을 보태 나만의 디자인 세계를 쌓아 올리고 싶어 오이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진출 한지는 내년이면 벌써 10년 차가 되고, 오이뮤는 5년 차 디자인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소비자보다는 창작자가 되고 싶었고,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디자인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스튜디오 창업을 꿈꾸시는 분들이 있다면 창업을 통해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그 업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물론 치열한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는 디자인 능력 개발과 특별한 안목을 갖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필수이겠지요! 저는 결국 야근을 일삼는 거북목 워커홀릭이 되었지만 디자인을 업으로 삼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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